생활물가를 건드린 담합, 결국 공정위가 움직였다
한동안 마트와 베이커리, 라면 가격을 보며 묘한 감각이 들 때가 있었다.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체감상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고 내릴 때는 늘 한 박자 늦었다. 이번에 드러난 밀가루 담합 사건은 그 불편한 감각이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사가 약 6년간 밀가루 판매가격과 물량을 짬짜미한 혐의로 역대 최대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번 사건이 더 크게 읽히는 이유는 명확하다. 밀가루는 단순한 가공식품이 아니라 라면, 빵, 과자, 국수처럼 일상 소비재의 출발점이다. 다시 말해, 제분사의 가격 결정은 곧바로 제빵·제면·제과업체의 원가를 흔들고, 결국 소비자 지갑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가장 아래쪽에서 발생한 왜곡이 생활물가 전체를 밀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제재는 상징성이 크다.
87.7%를 점유한 과점 구조, 담합이 더 치명적이었던 이유
공정위가 지적한 핵심은 이들 7개사가 국내 기업 간 거래(B2B) 밀가루 시장에서 87.7%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과점사업자였다는 사실이다. 과점 시장은 경쟁 사업자가 적기 때문에, 몇몇 기업이 호흡만 맞춰도 가격 신호가 쉽게 왜곡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줄어들고, 거래처 입장에서는 협상력이 약해진다. 밀가루처럼 원재료 의존도가 높은 품목에서는 이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이어졌고, 총 24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물량 담합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 담합 5차례가 확인됐다. 숫자만 놓고 봐도 단발성 실수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설계된 반복 행위였다는 점이 분명하다.
나는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시장의 형식적 경쟁과 실질적 경쟁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겉으로는 여러 회사가 존재하지만, 내부적으로 가격과 물량을 맞추는 순간 경쟁은 껍데기만 남는다. 공정거래법이 단순히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 아니라, 이런 허울뿐인 경쟁을 깨기 위한 장치라는 사실이 이번 사건에서 다시 확인된 셈이다.
담합 시작 시점 대비 2022년 9월 판매가격 상승폭
제분사별 ■■■■■■■■■■■■■■■■■■■■ 38% ~ 74%
시장점유율 ■■■■■■■■■■■■■■■■■■■■■■ 87.7%
원맥 가격이 오르자 바로 반영하고, 떨어질 땐 늦췄다
이번 사건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가격 조정 방식이다. 밀가루 원재료인 원맥은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원맥 시세가 상승하던 2020년부터 2022년에는 인상폭과 시기를 맞춰 판매가격을 빠르게 올렸다고 한다. 반대로 2023년 이후 원가가 하락하는 구간에서는 가격 인하를 최대한 늦췄다. 이 대목에서 담합의 본질이 선명해진다. 시장 원리에 맡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들끼리 인상과 인하의 타이밍을 조율해 이익을 극대화한 것이다.
공정위는 담합 시작 시점인 2019년 12월과 비교했을 때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이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 변화는 단순한 회계상의 숫자가 아니다. 제분사가 가격을 올리면 라면, 빵, 과자, 국수의 원가가 흔들리고, 그 부담은 다시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며 점심값과 간식값이 어떻게 올라가는지 체감하는 것처럼, 생활물가는 이런 식으로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 일상을 압박한다.
역대 최대 과징금과 가격 재결정 명령, 공정위가 꺼낸 카드
공정위는 7개 제분사에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관련 매출액도 약 5조6900억원으로 산정됐다. 공정위는 또한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함께 내렸다. 이는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 수준으로 다시 산정하라는 조치로,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적용되는 수단이다.
이 조치가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한 벌금 이상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과징금은 위법 행위에 대한 금전적 제재지만, 가격 재결정 명령은 시장의 틀 자체를 다시 세우려는 시도다. 실제로 2006년에도 이 명령 이후 약 5%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공정위가 이번에 가격 재결정 명령을 다시 꺼낸 것은, 밀가루처럼 민생과 밀접한 품목은 단순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 항목 | 내용 |
|---|---|
| 담합 기간 | 2019년 11월 ~ 2025년 10월 |
| 담합 횟수 | 총 24차례 |
| 시장점유율 | 87.7% |
| 과징금 | 총 6710억4500만원 |
| 관련 매출액 | 약 5조6900억원 |
보조금까지 받던 시기에도 계속된 담합, 신뢰가 무너진 지점
이번 사건이 더 씁쓸한 이유는 정부가 물가 안정 사업의 일환으로 지원한 471억원이 지급되던 시기에도 담합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투입된 공적 자원이, 정작 가격 왜곡을 지속하는 데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했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시장은 결국 신뢰의 구조인데, 이 신뢰가 무너지면 소비자는 가격을 믿지 못하고, 기업은 원가를 핑계 삼아 가격을 올리게 된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임직원 14명에 대해서도 고발 조치를 마쳤다. 심사보고서 단계에서부터 위법성이 중대하다는 판단이 있었고, 가격 재결정 명령과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도 함께 검토됐다. 앞으로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서면 보고하도록 한 조치 역시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런 후속 장치는 단순히 한 번 때리고 끝내는 방식이 아니라, 재발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감시 체계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와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마트에서 집어 드는 한 봉지의 밀가루 뒤에 이렇게 긴 담합의 시간과 숫자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은 꽤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이 공정한 시장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밀가루에서 시작된 경고, 생활물가 전반으로 번지지 않으려면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밀가루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에 대한 담합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단순한 원론이 아니다. 라면, 빵, 과자, 국수처럼 매일 먹는 품목은 소비자 체감 물가와 직결되고, 한 번 왜곡되면 그 여파가 생각보다 오래간다. 특히 과점 시장에서는 기업 몇 곳의 합의가 곧 산업 전체의 가격 질서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감시의 밀도는 앞으로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밀가루 값이 올랐다”는 수준의 뉴스가 아니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들이 수년간 가격과 물량을 조율했고, 원가 상승기에는 빠르게 올리고 하락기에는 천천히 내렸으며, 그 사이 소비자는 더 비싼 빵과 라면을 샀다는 구조적 문제의 고발이다. 나는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민생 정책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가격표는 숫자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누가 이익을 가져가고 누가 부담을 떠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밀가루와 같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의 가격 등을 놓고 이뤄지는 담합에 대한 감시를 보다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중히 제재해 나갈 계획이다.”
